‘산청곶감 지키는 호랑이’ 최호림 산청곶감작목연합회장
‘산청곶감 지키는 호랑이’ 최호림 산청곶감작목연합회장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6.12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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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 때부터 해온 곶감 농사...80년째 가업
곶감작목 연합회장 맡으며 곶감축제까지 '진두지휘'
2018년 6·13 지방선거 경남도의원 민주당후보 출마
최종 목표는 학자 "서로 배우고 공유하는 교육 지향"

최호림 지리산 산청 곶감작목 연합회장은 80년째 가업으로 곶감 농사를 지어왔다. 그는 연합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산청군 곶감축제 진행도 도맡았다. 올해 12돌을 맞은 곶감축제는 방문객만 6만 명 이상을 동원하며 성황을 이뤘다. 최 회장의 수완과 군의 적극 지원이 빚어낸 쾌거였다. 최 회장은 지난 6·13 지방선거 때 경남도의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정치에 앞서 그가 가장 꿈꾸는 일은 학자. 그는 농부 이전에 교육을 “스펀지를 만드는 과정”이라 믿는 전문 강사이기도 하다. 최 회장이 말하는 스펀지란, 교육 받을 사람이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흡수하기 위해 기초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쓴 말이다. 10시간짜리 강의를 해도 단 한 명도 졸지 않았다는 그의 걸쭉한 입담은 이날 인터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재근 산청군수가 “내가 1등인데 호림이에겐 2등이다”라고 말한 바로 그 사람. 최호림 씨를 만나고 왔다.

미디어팜과 인터뷰 중인 최호림 회장.

▲곶감 농장은 선대부터 이어져온 것인가.

할아버지께서 곶감 농사를 지으셨다. 올해로 80년째 가업이다. 저는 분가를 해 20년 전부터 아버지 땅에 곶감 농사를 짓고 있다. 지역 사회단체 일에도 많이 관여하고 있다.

▲산청군 곶감축제를 이끌고 있다.

12년 전부터 곶감 작목 연합회 임원을 해오다 회장직을 맡으면서 곶감축제 관련 일을 거의 도맡게 됐다. 10년 정도 감사 부회장 생활도 했다. 산청 곶감축제는 올해로 12돌을 맞았다. 1회 때는 2천만 원으로 시작한 축제였는데 지금은 1억 7천만 원 정도 예산이 융통되고 있다. 지난해까진 토, 일요일 이틀만 하다 올해 처음으로 목, 금, 토, 일요일을 해봤다.

▲평일이 낀 것은 무리수였을 수도 있다. 결과는 어땠나.

주위에서 ‘사람이 많이 오겠냐’ 걱정을 하셨는데, 다행히 많이 왔다. 6만 명 이상이 왔으니. 목요일엔 많이 안 올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그날부터 물건을 찾았다. 상품도 4일간 6억 원 넘게 판매했다. 행사 진행 예산 중 60%를 군에서 지원해줬다. 이재근 군수님이 많이 도와줬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이라면.

동선 고민을 많이 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산청 농특산물이 우선시 되는 걸 전제로 일주일 가량 계속 동선을 바꿨다. 산청 농특산물 부스는 다 무료로 줬다. 무대에도 산청인들을 우선적으로 올려줬다.

▲특히 행사장에 들어선 돔(dome)이 눈에 띄었다.

제가 전국 겨울 축제를 안 가본 곳이 없다. 벤치마킹할 수 있는 건 최대한 가져오기 위해서다. 한 번은 기장 멸치 축제에 갔는데 거기서 돔을 봤다. 우리가 써도 괜찮겠다 싶었다. 모험이었지만 반응이 좋아 앞으로도 계속 활용할 생각이다. 해당 돔 제작자는 여수, 순천 등지 박람회에도 자주 참가하는 사람이다.

지리산 산청곶감 홍보관 입구. 사진=김성대 기자.
홍보관과 붙어 있는 산청곶감 유통센터 전경. 사진=김성대 기자.

▲나흘간 6만 명 동원. 홍보가 잘 된 것 같다.

KNN 생방송투데이가 금요일 방영해준 게 컸다. 채널A에서 조면해준 것도 큰 도움이 됐고. 그 외 4년 운영해온 네이버 밴드를 비롯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홍보와 산청 지역 언론, 향우들을 통한 홍보가 성공적이었다.

▲연합회의 사업 규모는 어느 정돈가. 요즘 농가들이 하나같이 어렵다고들 말한다.

1000명 정도 회원을 둔, 산청군 작목회원들의 자발적 모임으로 보면 된다. 주 농가들은 시천면, 삼장면, 단성면, 금서면을 어우른다. 어르신들 사업 관련 서류 만들어주는 일이 주업무인데 이를 상근 직원 2명이 처리한다. 농가에서 쓰는 박스와 자재 등도 판매하는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금액이 오르기 때문이다. 남는 장사가 아님에도 굳이 하는 건 시장가격 조절 차원에서다. 우리 연합회는 순수 회비로만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융복합6차산업 석사과정 중에 있었던 것으로 안다. 공부는 계속 해나갈 생각인지.

석사과정은 6월에 공부가 끝난다. 이후엔 경희대에서 환경 쪽을 공부해보려 한다. 국립공원이 있는 산청에야말로 환경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부터 환경 쪽을 공부하려 했다. 그런데 강사들과 생각이 계속 부딪히더라. 그들은 실패한 일본의 6차 산업 이론을 계속 한국에 접목하려 했다. 6차 산업이 성공하려면 기본 베이스 즉, 도시인들이 돈을 쓸 수 있는 베이스가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빈곤해지는 한국 도시민의 소비는 한계에 부딪히게 돼있다.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쓸 수 있는 환경이 돼야 6차 산업이 성공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정주 인구가 늘어남에도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은 현실. 그들은 ‘사회적 인구’라 말할 수 없는 존재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강사들은 20년 전 초고령화 일본 이론을 지금에 맞추려 든다. 직접 공부를 하는 수밖에.

▲남성의용소방대연합에서 활동하며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18년을 했다. 그중 회장직을 4년4개월 맡았다. 의용소방대는 구급구조, 조난자구조 등 소방서에서 하기 힘든 일을 지원하는 단체다. 물론 소방 홍보 활동에도 나선다.

▲지난 지방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경남 도의원에 출마했다.

4년 전 새누리당 군의원 경선에 나갔었는데 저와는 정치 성향이 멀어 거리를 뒀었다. 사실 지난번에도 후보로 나갈 생각은 없었다. 그냥 캠프 살림이나 해보려고 갔다가 김원중 도의원 후보가 못 하겠다고 해서 얼결에 출마하게 된 거다. 그렇게 딱 62일 선거 운동을 했는데 사람이 할 게 아니다 싶었다. 이러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웃음) 잠도 깊이 못 자고. 선거 일주일 전까지 잃은 이만 5개였다. 지금 그 캠프는 그대로 살아있다.

지리산 산청 곶감작목 연합회 사무실에 걸려있는 조직도. 사진=김성대 기자.

▲“정치는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 했는데 저는 그 말에 반대한다. 바른 정치는 백성의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는 것이라 생각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 저는 힘없는 자들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당이라도 지지할 것이다. 그런데 상대 후보가 그렇진 못해서 직접 나선 것이다. 저보다 괜찮고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만 나온다면 캠프에 들어가 도와줄 생각도 있다. 내가 꼭 도의원이 되고 싶단 생각은 없다. 진심으로 산청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당시 공약들을 한 번 보자. 산청출신 고교 졸업자 산청 내 기업체·기관 100% 취업지원, 산청농산물 택배비 100% 직접 지원, 산청 어르신 한 끼 밥상, 그리고 농민수당제 등을 주장했다.

산청은 젊은 사람들을 위한 취업 여건 조성이 전혀 안 돼 있다. 도 조례를 만들고 회사들과 업무협약을 맺는 등 방법을 통해 산청 출신 인재를 우선 채용하는 취업 환경을 생각했다. ‘택배비 100% 직접 지원’은 산청 농·특산물 택배비만 20억 원이 나가는 현실, 작목회 회장을 하면서 느낀 택배비 부담에 비춰 제안한 공약이고, ‘산청 어르신 한 끼 밥상’은 현재 산청군에서 시범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르신 복지와 관련해 제가 최초로 제안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농민수당제는 ‘등록된 농민’이 아닌 ‘실제 농민’들에게 산청화폐를 만들어 1년에 40만원씩 지원하자는 취지였다. 산청 농가가 1만 가구니까 1년이면 40억. 1년 내내 산청 안에서 40억 원이 돌 수 있도록 하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저는 하루라도 빨리 산청 농민들이 잘 살면 좋겠다. 제 공약은 다음에 후보로 출마해도 변하지 않을 거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찾을 것이다.

지리산 산청곶감축제는 (사)한국축제콘텐츠협회가 주최하는 '대한민국축제콘텐츠대상' 수상식에서 4, 5회 2회 연속 '축제프로그램 우수상'을 받았다. 사진=김성대 기자.

▲최호림의 다음 목표,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가.

사람들이 가려워하는 걸 풀어주는 게 체질인 만큼 강의를 계속 하고 싶다. 공부를 더 하고 학자로 남고 싶은 게 꿈이라면 꿈이다. 저는 제 머리 속에 있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다 주고 싶다. 내가 가지고 있으면 그 값어치는 5천만 원 정도지만 그것이 100명에게 가면 50억 가치를 발한다. 전 나만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경계한다. 수강생 40명이 각자 한 가지씩만 가져가도 내 강의는 성공한 것이다. 가르치는 게 아니다. 서로 배우고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늘 강의한다. 정치는 마음 한쪽 구석에 아직 있긴 하다. 해보지 않으면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아서다. 아직 아내도 응원을 해주고 있고. 장담은 할 수 없다.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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