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사 집안'을 만나다, 이지환 다비치안경 삼천포점·거제고현점 점주
'안경사 집안'을 만나다, 이지환 다비치안경 삼천포점·거제고현점 점주
  • 조현웅 기자
  • 승인 2019.06.0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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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환 다비치안경 삼천포점, 거제고현점 점주와 그의 가족들은 '안경사 집안'으로 불린다. 아버지는 부산에서 36년째 안경을 만들어 온 명인이고, 형은 UNSW에서 검안의학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친척 역시 지역에서 안경원을 운영 중이다.

조부모나 부모의 직업을 가업처럼 이어갈 때, 또는 집안에 그 직업을 가진 구성원이 많을 때, 우리는 이를 두고 직업과 집안을 더해 ‘~~집안’이라 부른다. 흔히 교육자 집안, 의사 집안 등이 있다. 이처럼 수많은 집안 중에서도 직계가족은 물론 친척 대다수가 안경사로 일하는 ‘안경사 집안’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아버지는 부산에서 36년째 안경을 만들어 온 안경 명인(名人), 형은 안경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에 있는 주립 종합대학교 UNSW에서 PhD 검안의학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동생은 32살 이른 나이임에도 다비치안경 삼천포점, 거제고현점 두 곳을 운영하며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친척 역시 여러 지역에서 안경원을 운영 중이다. 안경원은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반면 안경사란 직업 자체는 생각보다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안경사 집안의 동생, 이지환 씨를 만나 안경사란 직업과 그의 집안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가족구성원 대다수의 직업이 안경사라 들었다.

그렇다. 아버지는 36년째 부산에서 안경원을 운영하고 계시고, 형은 UNSW에서 검안의학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저는 다비치안경 삼천포점과 거제고현점 두곳을 운영 중이다. 친척들도 지역에서 안경원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있는 부산이 아닌 삼천포와 거제에서 안경원을 운영 중인 이유가 있나.

부산이 고향이고, 아버지도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할 수도 있었지만 상권분석 등을 통해 삼천포와 거제에 더 경쟁력이 있다고 느꼈다.

▲다비치안경이란 체인을 선택한 이유는.

안경사 면허 획득 후 대전에 있는 다비치안경사관학교에 들어갔다. 다비치안경사관학교는 전국 각지의 우수 안경사를 교육 및 양성해 검증된 전문 안경사를 배출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으며 다비치안경의 커리큘럼, 시스템 등에 매력을 느껴 체인을 택했고, 16년 5월 삼천포점, 16년 11월 거제고현점을 열었다.

 

다비치안경은 '전국 정액 정찰제'로 전국에 있는 모든 매장의 가격이 동일하다.
다비치안경은 '전국 정액 정찰제'로 전국에 있는 모든 매장의 가격이 동일하다.
손님들을 위해 다비치안경 삼천포점에 마련된 카페 모습.
손님들을 위해 다비치안경 삼천포점에 마련된 카페 모습.

▲다비치안경의 경쟁력, 특색 등을 소개한다면.

우선 전국 매장에서 제품을 공동구매로 진행하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 그리고 전국에 있는 다비치안경 어디를 가더라도 ‘전국 정액 정찰제’로 제품 가격이 똑같다. 매장 내 손님들을 위한 카페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특색이다.

▲안경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안경사가 되려면 전문대 이상의 안경광학과에서 공부한 뒤 국가에서 시행하는 안경사 면허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시험은 필기시험(시광학이론, 의료관계법규, 시광학응용)과 실기시험으로 구성돼 있다.

▲그렇다면 가족 모두가 면허를 갖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다만 1989년에 안경사 국가자격시험이 처음 시행됐기 때문에 아버지와 삼촌처럼 선배 안경사들은 경력인정으로 면허취득시험 자격이 주어져 국가고시를 치르고 면허를 취득, 저와 형은 대학 안경광학과 졸업으로 시험 자격이 주어져 국가고시를 치르고 면허를 취득한 차이가 있다.

▲말 그대로 ‘안경사 집안’인데, 본인은 어떻게 안경사의 길로 접어들었나.

어릴 적부터 아버지나 친척 대부분이 안경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안경사란 꿈을 갖게 됐다. 특히 아버지를 보며 안경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일화가 있다. 20여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학생 때 아버지 안경원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손님이 있어 의자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와 손님이 대화하는 걸 얼핏 들어보니 어린 내가 판단하기에도 안경이 꼭 필요한 손님이었다. 하지만 손님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이제껏 안경을 쓰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아버지는 “함께 살아가야죠. 작은 것이지만 제가 도울 것이 있어 다행입니다. 오늘 손님이 받은 도움이 훗날 다른 이에게 다시 건너가길 바란다”며 손님의 눈(目)에 맞는 안경을 제작해주셨다.

아버지가 손님께 건넨 말은 나에게 무척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 있다. 원래 존경하는 아버지였지만 그날은 남자로서 아버지께 반했다.(웃음) 이를 계기로 나도 아버지처럼 안경사가 되어 누군가를 돕겠다고 다짐했다.

 

다비치안경 삼천포점은 저소득 청소년, 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안경지원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비치안경 삼천포점은 저소득 청소년, 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안경지원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지환 점주도 아버지처럼 선행을 베푼 적이 있나.

다비치안경 경남지부 활동으로 매달 1회 지역을 돌며 어려운 이웃들이 안경을 맞출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개인적으로 사천 소재 6개 동의 저소득 청소년, 독거노인에게도 안경을 지원하고 있으며, 안경뿐만 아니라 사천에 있는 학교에 간식지원 행사도 펼치고 있다.

다른 얘기지만 아버지가 몽골에 안경봉사를 다녀오셨다. 몽골 사람들은 시력이 좋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일부 부족에만 해당된다. 아버지에게 전해 듣기로는 시력이 나빠 앞이 흐릿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만큼 환경이 열악하다고 한다. 다음에는 아버지와 함께 몽골 안경봉사를 가보고 싶다.

▲‘안경사’란 직업이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3D 업종으로 인식됐는데.

맞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루 12시간씩 일함에도 임금은 적었고, 휴무도 한 달에 2회 뿐이었다. 때문에 이직률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직장이 있겠지만 제가 다비치안경을 운영하며 직접 겪어보니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주5일 근무에 임금도 높고 이직률을 줄이기 위해 복지혜택도 많다. 전반적으로 안경사란 직업의 대우가 많이 좋아졌다.

▲본인의 자식도 안경사가 될 수 있다. 3대째 안경사 집안을 기대해도 될까.

개인적으로는 훗날 결혼해 자식을 낳는다면 자식도 안경사가 됐으면 좋겠다. 물론 자식이 원한다는 가정하에.(웃음) 자식이 안경사가 된다고 한다면 저처럼 사업 쪽으로 가는 길, 형처럼(검안의학박사과정) 지식 쪽으로 가는 길 등 여러 길을 알려줄 것이다. 꼭 안경사가 아니더라도 자식이 원하는 것을 응원할 것 같다.

 

이지환 점주가 알려주는 얼굴형 안경 맞춤!

조현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