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만평 벼농사 짓는 청년농부 '박지원 경상남도4H연합회 회장'
12만평 벼농사 짓는 청년농부 '박지원 경상남도4H연합회 회장'
  • 조현웅 기자
  • 승인 2019.05.1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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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박지원 씨는 김해시 한림면 일원에서 12만평 규모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어머니가 부상을 당해 벼수확에 차질이 생기자 어머니 대신 아버지를 돕다 농사에 비전을 느끼고 농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농부 박지원 씨는 김해시 한림면 일원에서 12만평 규모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어머니가 부상을 당해 벼수확에 차질이 생기자 어머니 대신 아버지를 돕다 농사에 비전을 느끼고 농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김해시 한림면 일원에 벼농사를 12만평 규모(친환경 9만평 등)로 짓는 34살 청년농부가 있어 화제다. 그 주인공은 농부 박지원 씨다. 그는 28살이란 젊은 나이에 농사를 짓기 시작해 어느덧 6년차가 된 베테랑 농부다. 박 씨가 처음 농사를 짓던 때는 요즘처럼 청년농이 자리 잡혀있던 시절이 아니라 그는 청년농의 가능성을 두고 수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박지원 씨가 농사를 짓게 된 계기는 부모님 일을 돕게 되면서 부터다. 그는 경상대학교 컴퓨터과학과에 재학 중이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는데, 어느 청년이 그렇듯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을 딱히 찾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자동차’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졸업 후 자동차딜러로 일 해보려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서 자동차딜러로서 일을 배우던 그는 어느날 어머니가 도랑 위 나무를 건너다 이끼에 미끄러져 다쳤단 소식을 듣게 됐다. 당시 그의 부모님은 벼농사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자신이 다친 것 보다 집안일을 더 걱정하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다친 시기가 벼농사 수확 시기와 맞물렸던 터라 어머니가 부상으로 빠지면 자칫 벼를 수확하지 못한 채 모두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지원 씨는 김해로 내려와 그 해 벼농사를 아버지와 함께 마무리했다. 그는 종종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경험해 보긴 했으나 처음으로 농사일을 제대로 한 것이라 무척 힘이 들었었다고 말했다. 오죽했으면 벼를 모두 포기하고 서울로 다시 가버릴까 생각도 했었다고. 그래도 한 해를 농사를 마무리하고 정산을 해보니 만족스런 수익이 나와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고 느꼈다 했다. 이처럼 수익이 확실하자 박지원 씨는 불안전한 딜러의 꿈을 쫓기보다는 현실에 타협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벼농사는 타농사에 비해 시간적 여유도 있는 편이었다. 이에 박 씨가 청년농에 대해 고민한 결과 ▲아버지가 기반을 마련해뒀기 때문에 보다 유리하게 농사를 시작할 수 있는 점 ▲지금 세대까지는 농사를 짓는 이들이 많지만 우리 세대는 지금의 농사들을 이어갈 사람, 즉 청년농이 없어 경쟁력 있는 점 등을 이유로 본격적인 청년농의 길로 들어선다.

“친구 소개로 처음 4H를 방문했을 때, 밥 먹으려고 모이는 단체인가 생각했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김해4H 사무국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청년농의 문제 등을 깨닫고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느꼈다. 회장 임기가 2년인데, 앞서 많은 것들을 이루신 회장님들, 후에 맡은 것들을 해주실 회장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경남 청년농’을 위해 수많은 고민을 하겠다. 우선 4H의 체계를 확실히 하고 싶다. 4H 조직은 물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많은 농업 단체들의 개편도 필요해 보인다. 경남도에만 농업단체가 작게는 수십여 개에서 많게는 수백여 개에 이른다. 우리는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경남만이라도 농업하면 경남4H로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박지원 경상남도4H연합회 회장은 2016년 김해4H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김해4H 부회장, 경남4H 사무국장, 김해4H 회장 등을 역임했다.
박지원 경상남도4H연합회 회장은 2016년 김해4H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김해4H 부회장, 경남4H 사무국장, 김해4H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아버지께 농사를 배우며 농부로서의 기초를 쌓아갔다. 그러던 중 2014년 주변에서 소를 키우던 친구 소개로 김해4H에 가입하게 됐는데, 가입 후 2년간 동안은 있는 듯 없는 듯, ‘이곳은 모여서 밥 먹는 단체인가’라고 생각할 만큼 관심 없이 활동했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2016년 그에게 4H 활동을 하며 친해진 동생이 김해4H 사무국장 자리를 맡아 달라 부탁했고, 그는 얼떨결에 사무국장 직을 수락하긴 했다. 하지만 본인조차 이곳이 어떤 단체인지 잘 몰랐던 시기라 그는 우선 나부터 4H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지자체, 경남도, 한국중앙4H연합회 등을 발로 뛰기 시작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책임감을 갖고 4H활동을 이어간 그는 4H의 필요성 등을 알 수 있었고, 다음해 김해4H 부회장, 그 다음해 회장 및 경남4H 사무국장, 현재의 경상남도4H연합회 회장까지 맡게 됐다. 있는 듯 없는 듯 활동했던 그가 이제는 경남의 청년농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박지원 경남4H회장은 자신의 임기 2년 동안 4H 체계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정책 등 많은 부분에 있어 청년농들이 힘을 모아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수십여 개의 단체로 나눠져 있어 힘이 분산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수많은 농업단체들을 두고 “기존의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 몇몇이 모여 농업단체가 만들어진다. 다른 단체를 가봐도 이 단체에 있던 사람, 저 단체 있던 사람 몇몇, 새로운 사람 몇몇이 모여 새 단체가 된다. 이처럼 나뉠 때로 나뉘어져 버리니 농민들의 목소리가 모아지질 않는다. 4H도 마찬가지다. 4H 속에도 여러 단체가 있으니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4H연합회는 4H본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활동한다. 4H본부는 기존 4H였던 청년들이 나이가 들어 4H를 졸업하며 만든 단체다. 원래 졸업생이 있기 까지는 4H에서 모든 것을 처리했는데, 본부를 거쳐 활동하다 보니 제약이 많다. 본부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청년농을 위해 나서주거나 4H에 일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현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