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아줌마의나홀로세계여행] '물의 도시' 중국 제남을 가다
[진주아줌마의나홀로세계여행] '물의 도시' 중국 제남을 가다
  • 곽은하
  • 승인 2018.12.22 16: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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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남은 곳곳에 140여개가 넘는 샘물이 있다. 사진=곽은하 제공. 

 

비행기표를 샀다. 설렘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배낭 속에 옷가지들을 챙겨 넣고 중국에 관한 책도 한권 넣었다. 비자는 1년짜리 복수비자를 신청했다. 1년 동안은 중국여행만 해볼 요량이다. 두려움보다는 기대와 설렘이 앞선다.

산동성 제남을 선택한 건 태산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지만, 산동성의 성과 제남의 ‘물의 도시’ 이미지도 선택 이유였다. 제남은 곳곳에 140여개가 넘는 샘물이 있으며 대명호, 표돌천, 천불산이라는 3대 명승도 둘러 볼 수 있는 사통팔달의 도시다.

7월말 산둥성 제남공항은 더웠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제남역 옆 호텔을 찾아가야 한다. 여러 번의 혼자 배낭여행 경험상 호텔은 기차역 주변이 가장 찾기 쉽고 이동도 편리하다. 한자로 제남역이라 적힌 수첩 글을 보여주며 차표 끊는 곳을 찾았다. 여기서 난 이방인이며 말 한마디 못하는 벙어리다. 공항버스에 올랐다. 철도역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릴 것 같다. 종착지이므로 내리지 못할 걱정은 없다.

 

제남역 앞. 여기서 난 이방인이며 말 한마디 못하는 벙어리다. 사진=곽은하 제공.

 

호텔을 찾기가 힘들다. 붉은색으로 쓰인 흘림체 같은 글들이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장 더운 오후 한 시, 배고픈 건 두고라도 어서 호텔을 찾고 싶은데. 사람들에게 주소를 보여주고서야 호텔 바로 앞에서 헤매고 있는 ‘벙어리’ 나를 발견하곤 헛웃음을 짓는다.

가방을 풀고 잠시 쉰다. 새벽부터 움직여 긴장한 몸이 사르르 풀린다. 첫날. 오늘은 뭘 하지? 계획으론 주변 둘러보기인데. 그냥 닥치는 대로 하지 뭐. 늦은 점심을 해야 한다. 아는 글이 없으니 주문도 쉽지 않겠지. 역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30여분을 혼자 걷다 만두집 발견! 기쁘다. 그래도 만두는 실패 없이 먹을 것 같다. 게다가 칭다오 맥주까지. 그런데 이 더운 날 맥주가 따뜻하다. 시원한 걸 달라 영어로 해보다가 냉장고를 여는 시늉까지 하고서야 대화가 통했다. 삥거? 차가운 거라는 소리인가 보다. 삥거. 외워둬야지! 이렇게 제남에서 첫날은 저녁 양꼬치와 칭다오까지로 마무리 한다.

 

냉장고 문을 여는 시늉을 하고서야 마실 수 있었던 차가운 칭다오 맥주. 삥거! 사진=곽은하 제공.

 

새벽 여섯 시, 아침도 굶고 장거리 버스터미널로 갔다. 기차역 근처라 찾기 쉬웠다. 태산을 갈 생각이다. 먼저 태안행 버스를 타야한다. 한자가 쉬워 바로 찾았다. 매표소로 가서 태안이란 한자어를 보여주고 지갑서 돈을 꺼내 쫙 펼쳤다. 알아서 가져가고 티켓을 준다. 타이산? 하고 물어본다.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인으로 보이긴 하나보다. 버스에 올랐다. 아무도 없다. 버스기사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태산을 보여줬다. 고개를 끄덕이는 기사는 곧장 나를 싣고 덥고 먼지 나는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창가로 보이는 도로 밖 넓은 이곳은 끝없는 평야와 황량함으로 혼자인 나를 스스로 비춰보게 한다.

2~3시간을 달려왔다. 기사가 나에게 내리라는 시늉을 했고 급히 배낭을 챙겼다. 기사는 아직 정류장에 도착하지 않았으나 길가에 버스를 세우고선 손가락으로 길을 건너라는 싸인과 함께 손가락 세 개를 표시해준다. 길을 건너 3번 버스를 타라는 뜻이리라. 덕분에 나는 한 번의 실수도 없이 태산 입구 천외촌까지 갔다.

 

새벽 여섯 시, 아침도 굶고 태안행 버스를 탔다. 태산을 가기 위해서였다. 사진=곽은하 제공.

 

태산 입구는 멋졌다. 탁 트인 입구가 나에게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는 듯 했다. 이곳은 중국인들이 죽기 전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니 나도 달리 보였다. 태산은 그리 높지 않은 1545m 산이다. 케이블카로 30여분이면 거의 정상까지 간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왕복 5만 원 정도다. 중국서 5만원은 체감 상 15만 원쯤으로 느껴진다. 많은 중국인들이 이 더위에 걸어 오르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망설인 것도 잠시, 너무 더운 7월 말이라 나는 손쉽게 가기로 했다. 엄청난 인파가 걸어걸어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중간을 넘어서는 18반까지 오르면 저절로 18, 18을 외치게 된단다. 그럴 것이 7736개의 폭 좁은 돌계단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태산의 중간을 넘어서는 18반까지 오른 사람들은 절로 18, 18을 외치게 된단다. 사진=곽은하 제공.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잠시 앉아 쉬었다. 태산을 해발고도로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는 듯 하다. 고대문화가 발생한 중원의 동쪽, 해 뜨는 동쪽바다를 볼 수 있는 산악신앙의 대상이다. 진시황과 함께 72명 중국황제들이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하니 중국의 3대종교(도교, 유교, 불교)의 성산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본 태산은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품이 웅장하다고 할까. 탁 트인 정상에서 사방으로 보이는 태산은 그러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아직 황제들이 느끼는 무언가를 볼 눈을 가지진 못했나 보다. 내려오면서 보이는 골짝골짝이 각기 다른 모습을 자랑하듯 자태를 뽐내며 내 곁에 있다.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상 근처 가게에는 사람들로 붐볐고, 혼자 자리를 차지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더위에 지친 나는 케이블카로 내려왔지만 태산의 비경은 반대쪽 천촉봉 코스에 몰려있다. 진시황이 올랐던 코스다.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천촉봉에 인사를 했다.

 

태산 정상에서. 태산의 비경은 진시황이 올랐던 반대쪽 천촉봉 코스에 몰려있다. 사진=곽은하 제공.

제남행 막차는 5시 30분, 배에선 꼬르륵 꼬르륵. 하지만 먹을 시간이 없다. 그냥 굶고 제남으로 돌아가 먹기로 했다. 돌아오는 막차 버스에서 나 자신에게 대견하다 칭찬하며 오늘도 칭다오와 양꼬치로 태산여행을 마무리 한다. 내일은 물의도시 제남에 빠져보리라. 칭다오, 삥거!

곽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