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 선생의 정신을 잇다' 한국 오성다도 전수관 박군자 관장
'아인 선생의 정신을 잇다' 한국 오성다도 전수관 박군자 관장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4.26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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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은초 정명수 선생의 며느리로 차에 입문
아인 박종한 선생의 '오성다도' 전수받아 20여년째 전승
박 관장 "차는 건강이요 벗이며, 풍류요 예술이자, 행복이다"
진주시 상봉동 비봉루의 대청 방에서 미디어팜과 인터뷰 중인 박군자 오성다도 전수관장.

진주시 비봉산 아래 있는 비봉루는 고려 말·조선 초 대유학자인 포은 정몽주가 안렴사(按廉使, 고려·조선 초 지방 장관의 하나-편집자주)로 진주에 다녀갈 때 잠시 머물렀던 누각으로, 포은의 17대손인 봉은 정상진이 1939년 복원해 지었다. 정상진은 일제강점기 수산물 유통 등으로 재산을 모은 진주의 대부호였다. 비봉루는 2003년 4월 17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9호로 지정되었다.

서예가 은초 정명수는 봉은의 장남이다. 진주농고를 졸업한 그는 당대 최고 서예가였던 성파 하동주 선생 아래서 추사체를 익혔다. 추사체의 명맥을 이은 한국 서예계의 거목인 은초 선생은 조상인 포은 정몽주를 추모해 부친이 지은 비봉루의 현판을 썼다. 은초 선생은 2001년 1월 9일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한국 오성다도 전수관 박군자 관장은 그런 은초 선생의 며느리다. 박 관장은 1964년 2월 4일 한학자였던 남편과 결혼하며 정씨 집안과 연을 맺었다. 그의 기억에 비봉루는 문학가와 시인, 서예가와 한학자, 언론인, 학교 재단 이사장들이 오전 9~10시가 되면 두루 모여 차를 마시는 곳이었다. 한국 다도 입문서인 <한국의 차도>를 쓴 효당 최범술 스님, 개천예술제를 창시한 시인 설창수, 진주 소싸움을 보고 소를 그렸다는 화가 이중섭 등 비봉루를 찾는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했고 또 거대했다.

술을 오래 마시면 혼미해진다는 이유로 당시 예술인들은 차를 자주 마셨다. 박군자 관장도 차를 즐겼던 시아버지 은초 선생의 영향으로 차에 입문했다.

“어느 날 은초 선생께서 너도 차 좀 마셔보라시더군요. 그렇게 한 잔 마시고 나니 또 부어 주셨고, 두 잔을 마시니 다시 부어주셨습니다. 석 잔째 주실 때 선생께 여쭸죠. ‘아버님 차는 항상 많이 마셔야 합니까.’ 그랬더니 선생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첫 잔은 차색이고 다음 잔은 차 맛이며, 숨을 코로 내쉴 때 그때 비로소 차향을 느낀다.’ 차의 색·미·향을 느끼기 위해선 석 잔 이상 마셔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진주시 비봉산 아래 있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9호 비봉루 전경. 여말·선초 대유학자인 포은 정몽주가 안렴사로 진주에 다녀갈 때 머무른 비봉루는 그의 17대손인 봉은 정상진이 1939년 복원해 지은 누각이다. 사진=김성대 기자. 

박 관장에게 차를 알게 해준 사람은 은초 선생이었지만 차를 깨닫게 해준 이는 따로 있었다. 아인 박종한. 박군자 관장은 “인성을 생활 속에서 닦는” 오성다도를 정립한 아인 박종한 선생과 인연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29살 나이에 진주 대아고등학교를 세운 아인 선생과 박 관장은 1981년도에 처음 만났다. 이도다완을 새로 구웠으니 보러 오라고 아인 선생이 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아인 선생님이 손수 말차를 격불해 ‘은초 선생님 며느리 분을 뵙게 돼 영광입니다’시며 건네주셨어요. 제가 ‘잔을 어떻게 잡아야 합니까?’ 질문했더니 선생은 말차 한 잔을 더 격불한 뒤 직접 본을 보이셨죠. 합장을 하고 두 손으로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시되 세 번에 나누어 마셨지요. 그런 뒤 향이 머리끝까지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 왔는데, 집에 와서도 말차의 그 향이 계속 생각이 나는 거였어요. 이틀, 사흘이 지나도 머리에서 사라지지가 않았죠. ‘과연 이게 뭐길래 날 이렇게 사로잡나. 차란 무엇인가.’ 생애 처음 차를 화두로 삼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인 선생님께 자청해 차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말씀 드린 게 제 차 인생의 시작이었네요.”

박 관장은 만해의 시 구절처럼 ‘날카로운 첫 키스’ 같은 아인 선생과 인연을 시작으로 훗날 오성다도 전수자가 됐다. 하지만 오성다도회는 처음부터 오성다도회가 아니었다. 생전에 아인 선생은 “김정 부인이라는 사람을 추모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구한말 채소를 키워 팔아 번 돈을 아껴 사회에 환원한 김정 부인은 옛 중안초등학교(현 진주초등학교)에 사비로 여학생 전용교실을 두 칸 지어 ‘여성도 배워야 한다’는 걸 강조한 사람이다. 아인 선생은 그런 김정 부인을 두고 "진주교육대학교 박물관에 부인의 자료가 다 있다. 여성들이 이런 분을 칭송해야 한다"고 늘 얘기했다. 결국 김정 부인의 정신은 오성다도에까지 영향을 끼쳐 차회를 만들게 되니 이른바 '김정 차회'다. 김정 차회는 현 오성다도회의 전신이다. 박 관장이 이끈 오성다도회는 10년간 사천 축동에 있는 김정 부인의 묘소에 가 헌다를 했다. 진주시와 사천시가 함께 했던 이 행사는 그러나 김정 부인의 후손들이 부담스러워하면서 그 맥을 잇지 못했고, 헌다례는 결국 아인 선생을 위한 행사가 됐다.

"생전에 아인 선생께서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가고 없으면 헌다례 해줄 것이오.' 그에 전 '예, 해드려야지요' 대답을 했고, 답을 했으니 실천해야 했죠. 2012년 5월 7일 아인 선생이 떠나시고 매년 5월 첫째 토요일, 약속대로 선생 묘소를 찾아뵙고 문안을 드립니다. 공교롭게도 선생은 떠나신 때도 봄, 태어나셨을 때도 봄(4월 8일)이었어요. 하지만 4월 초엔 햇차가 안 나는데다 소천하신 날이 5월 첫 주니까, 기왕이면 햇차를 올리기 위해 때를 그리 잡았습니다. 아인 선생을 위한 헌다례는 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진주 사람이라면 다 아는 행사죠."

아인 선생이 정립했고 박군자 관장이 전수받은 오성다도는 "배웠으면 행하라" 가르친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敬義)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사진=김성대 기자.

박군자 관장은 아인 선생의 뜻을 전수받은 뒤로 20년 넘게 오성다도 교육을 해왔다. 그간 박 관장에게 정식으로 교육받은 사람들만 넉넉잡아 500명이 넘는다. 진주교육대학교와 경상대학교,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등에서 펼쳐온 오성다도 교육은 초급반, 전문반, 사범반으로 나뉘는데 그러나 아직 박 관장이 점찍은 전수자는 없다. 사범반까지 가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엔 아직 제대로 된 다법이 없다고 봅니다. 반면 말차가 대표하듯, 오성다도는 그 사상과 철학이 확실하죠. 오성다도의 규범과 호흡, 과정은 매우 과학적입니다. 좌뇌와 우뇌의 움직임을 다루는 다법이랄까요. 아인 선생께서 그랬듯, 저 역시 시립도서관에 사다시피 하며 철학과 호흡, 정신에 관해 지금도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전수를 하기 위해선 확고한 게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론과 실체가 맞지 않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제가 확실하게 길을 잡아주어야만 오성다도가 사람들에게 정확히 전수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 과제이고 그래서 지금도 연구 중입니다."

대중의 시선에서 봤을 때 차는 언뜻 국악의 운명과 닮았다. 평온한 그 맛은 자극적인 커피에 늘 인기를 내주고 있고, 좋은 건 알겠는데 다가서기란 또 쉽지 않다. 오성다도만 해도 데카르트와 브렌따노, 칸트와 공자, 맹자와 남명의 사상으로 중무장한 엄연한 철학이다. 과연, 차의 대중화를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지 박 관장에게 물었다.

"차를 다루는 공개강좌를 자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주 접하고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알게되고 인식에 깊이 배야 사고가 열리는 거니까요. 기본적으로 커피는 수입하는 것입니다. 커피를 수입하는 돈이 차의 100배가 넘는 현실, 이 외화 지출의 현실을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차를 마시는 것이 애국이라고 보는 쪽입니다. 차는 정신을 맑게 할뿐더러, 몸에 축적되는 지용성 커피에 비해 마시면 배설되는 수용성 음료라는 면에서도 사람에게 유익합니다. 커피 못지 않게 국산차 홍보를 해야할 필요가 있고, 이는 곧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길임을 알려야 한다고 봅니다. 기호품이므로 무조건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는 못해도, 어떤 길을 택할 지 질문은 던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박 관장은 건강, 수신, 좋은 벗, 예술, 풍류, 행복, 소원성취를 가져다주는 것이 차라고 말했다. 그는 정신,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선 차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차를 마시면 피가 맑아지고 눈과 귀가 밝아지는데, 그것이 바로 차의 본성이라는 게 박 관장의 주장이다. 그러다보면 절로 행복해지고 웃음이 나오고 세상만사가 긍정적으로 보인다는 것. 차는 건강을 지킴이고 내 본향을 찾음이다. 차는 꿈과 희망이며, 차를 마시면 나와 남이 더불어 산다는 마음이 든다. 차는 사람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런 차생활의 정점은 결국 '혼자 마시는 것'이다.

"차란 혼자 마시면 신(神), 두 세 사람이 마시면 승(勝), 서 너 사람이 즐기면 취미(趣), 일곱 이상이 마시면 평범하다(凡) 했습니다. 이처럼 차는 한학에도 밝게 해주는데요. 처음엔 어렵지만 한자도 두 세 번 쓰다보면 자신의 실력이 됩니다. 제 경우 차 공부를 하며 한문을 익힌 셈이죠.(웃음)"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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