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수칼럼] 청년 임업인이 걸어가는길 (1)
[김만수칼럼] 청년 임업인이 걸어가는길 (1)
  • 김만수
  • 승인 2020.05.1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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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수 둔철야생농원 대표 / 산청 4-H 회원
김만수 둔철야생농원 대표 / 산청 4-H 회원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그것이 나는 아니길 바라는 일들. 나는 그 길을 쉼 없이 걸어간다.

때로는 힘들고 지쳐서 뒤돌아보고 싶을 때 난 뒤돌아보는 대신 하늘을 본다. 주변의 푸른 초목들은 덤으로 보면서 말이다.

나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진정 사랑한다는 자부심 강한 임업후계자이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청년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평범한 청년이 특별해지는 데에는 열정과 땀방울만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등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이렇게 중얼거려본다.

취업에 목말라하던 청년, 대학 졸업이 부족해서 학원을 기웃거리던 그 청년이 평생직장 그것도 대표자로 살아가는 비법 말이다.

이 시대 젊은 청춘들 중 힘들지 않고 지치지 않은 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모르지만 그중에 길 잃은 이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평소 일상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예쁜 아내와 더 예쁜 세 살 된 딸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산청에 살고 있다.

내가 오늘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임업인이 된 계기는 대구대학교 산림자원학과 재학 당시 졸업생 초청 취업특강을 듣게 되면서다.

졸업한 선배들의 직업군은 산림청, 임업직공무원, 산림조합이었다. 선배들의 직업에 따라 상하관계가 느껴졌다. 산림청, 지방직, 산림조합 이렇게 국한된 산림의 조직 속에서 답답해 보인 조직관계라는 것이 좋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재학 당시 대구대학교 산림자원학과 부속연습림에서 다양한 수종의 수목을 관리하면서 문득 비전이 있어보이는데 왜 선배들중에 본인의 산을 가꾸고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없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부모님이 귀촌하신 산청으로 내려오게되었다

▲ 숲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란

처음 들어와서 하게된 것은 부모님이 귀촌 후 소일거리로 하던 소나무 숲아래 참나무 원목표고버섯이었다.

새로운 일들이 많았다. 표고버섯 종균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면서 마치 손가락에서 버섯이 나올 것처럼 지겹고 아프기도 했다. 몸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힘들었다. 그래도 찾아오는 후배들에게 임업의 다양한 길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임업 관련 지식과 현실적인 정보를 교류 하기 위해 29살에 임업후계자로 지정받고, 50,60대가 주축인 임업후계자 산청군지회에서 활동했다. 지역사회에 녹아들기위해 적잖은 노력도하였고, 그렇게 앞만 달리다 보니 어느순간 기회가 찾아왔다.

바른먹거리를 추구하는 국내에서 고가와 최상품 친환경농산물을 취급하는 기업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지리산이 자리잡은 명품산청 그 속에서 생산되는 표고버섯의 상품성이 받쳐주니 프리미엄 친환경 농산물 이미지에 부합하여 백화점과 대형매장에 납품을 시작하게됐다. 그래서 억단위의 연매출을 경험하게되었다. 승승자구 농사일이 재미가 붙기시작했다. 하지만 모든일은 뜻대로만 되지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

김만수 둔철야생농원 대표 / 산청 4-H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