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 영화 같은 음악 속 너와 나, 시가렛츠 애프터 섹스 'Cry'
[음반리뷰] 영화 같은 음악 속 너와 나, 시가렛츠 애프터 섹스 'Cry'
  • 김성대
  • 승인 2019.12.0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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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렛츠 애프터 섹스(이하 'CAS')의 곡들은 모두 비슷하다. 듣고 있으면 그 곡이 그 곡 같다. 이건 나쁜 뜻이 아니라 CAS가 그만큼 일관된 분위기와 주제를 갖고 자신들만의 소리를 들려주는 밴드라는 의미다. 이 음악을 놓고 누구는 희뿌연 드림팝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소심한 슈게이즈라 말을 보탠다. 공허한 앰비언트 팝 또는 축축한 슬로코어로 이들 음악을 정의내리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다 맞는 말이다. 시가렛츠 애프터 섹스의 음악은 정말로 공허한 꿈 속을 헤매는 소심하고 느린 음악이기 때문이다. 초겨울 새벽녘 안개를 닮은 흑백 앰비언스와 단순하면서 격정적인 무중력의 미니멀리즘. 그 음악은 1집의 곡 제목처럼 또한 한없이 달콤('Sweet')하다.

시가렛츠 애프터 섹스라는 팀명은 그 이름부터가 무엇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름이 그림을 그리고, 영상과 이미지는 음과 음들 사이를 부지불식간 오간다. 이 팀의 리더인 그렉 곤잘레스가 비디오 유통업자인 아버지 덕에 누린 VHS테이프 1천 장은 그대로 미래에 자신이 불 붙일 음악의 도화선이 됐다. 지지부진했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루이스 부뉴엘의 <부루주아의 은밀한 매력> 속 한 장면을 보고 곡의 브릿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그렉의 멜로디(와 분위기)는 그래서 스스로 언급했듯 왕가위의 <화양연화>와 <중경상림>이 음악으로 만들어진다면, 이라는 가정에도 무리없이 부합한다.

어떤 로맨스나 연애에도 완전히 만족하지 못한다는 그렉은 두 번째 앨범의 첫 곡 'Don't Let Me Go'에서처럼 늘 자신의 경험(특히 이성과의 로맨스)과 생각을 음악이라는 붓으로 천천히 그려왔다. 그는 때론 '변태'를 뜻하는 일본어('Hentai(変態)')를 제목으로 삼아 그야말로 변태적인 스토리텔링을 감행하기도 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America'를 좋아하고 쳇 페이커의 양성적인 목소리를 좋아하는 그렉은 프랑스와즈 하디의 풀꽃내 묻은 체념, 브라이언 이노의 아치형 적막, 칵토 트윈스의 불안한 환상, 심지어 쇼팽의 유리알 같은 낭만까지 훔쳐와 창작의 식재료로 삼는다.

사랑했던 연인(들)과 추억을 풀어나가는 무표정한 독백. 그 살얼음 같은 리버브 톤 엇비슷한 사연들을 담은 [Cry]는 분명 1집의 연장선에 있다. 아니, 어쩌면 이 지독한 감성의 휘발은 시가렛츠 애프터 섹스라는 밴드가 3집, 4집에서도 이어갈 그들 음악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그 본질이 데뷔 10년 만에 대중을 사로잡은 것이고 대중은 앞으로 10년 동안도 그 근본을 주목할 것이다.

꿈은 지루한 법이 없다. 꿈은 꿈이기에 헐겁고 꿈이어서 들뜬다. 그런 꿈은 또한 보편적이다. 소리로 꿈을 꾸는 CAS의 음악도 그렇다.

글/김성대 (본지 편집장ㆍ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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