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파머스 조합원 인터뷰 11] '귀족호두 가꾸는 36년차 해인사 매장' 해인특산물 김복이 대표
[합천파머스 조합원 인터뷰 11] '귀족호두 가꾸는 36년차 해인사 매장' 해인특산물 김복이 대표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11.1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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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출신...부산 등지 직장생활하다 1983년 귀농
'해인특산물' 최치원 기린 고운암과 해인사 중간에 위치
오미자, 고사리가 주작물. 도라지, 산추, 초피 등 재배
국내 드문 '귀족호두 나무' 보유. "25년만에 열매 열려"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과거엔 '원치인 마을'로 불렸다)엔 해인사의 부속 암자인 고운암(孤雲庵)이 있다. 해인사 주차장에서 용문폭포 쪽으로 가다 지금은 폐교된 해인초등학교를 오른편에 두고 길을 오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고운암은 그 이름에서도 짐작되듯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이 속세를 멀리 하려 가야산에 은거하던 초막 자리에 들어선 암자로, 지금 법당은 1974년에 세운 것이다. 현재 이곳에선 일공 스님이 수도와 암자 관리를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운암 근처에 있는 비석. '孤雲先生構邸隱逸之地(고운선생구저은일지지)'가 새겨져 있다. '고운 선생이 초막을 얽어 지어 세상과 멀리 하며 살았던 터' 정도로 뜻풀이 된다. 사진=김성대 기자.
해발 약 860미터에 있는 고운암 전경. 현재 이곳은 일공 스님이 수도와 관리를 병행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김성대 기자.

1983년부터 정착, '해인특산물'은 매장이면서 집

고운암에서 차로 5분 거리엔 해인사 집단시설지구 내 '해인특산물(특산물 전시장)'이라는 가게가 있다. 해인특산물은 해인사에서도 차로 5분이면 닿는다. 김복이 대표는 이 가게를 1983년에 열었다. 70년대 중반 군 제대 후 부산, 안양 등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그는 부모님이 별세한 뒤 가산을 정리하러 고향에 내려왔다 그대로 정착했다. 5남매 중 장남으로서 합천 귀농은 마치 그의 운명처럼 숙제가 됐고 미래가 됐다.

김 대표는 인근에 농장을 두고 직접 재배한 작물들을 매장에서 판매한다. 오미자와 고사리를 중심으로 도라지, 버섯, 산추, 초피(재피) 등 작물들은 생으로도 팔고 말려서도 판다. 김복이, 장순덕 부부에게 매장은 집이면서 가게다. 장순덕 씨는 남편인 김복이 대표를 중매로 만나 1979년에 결혼했다. 장 씨는 경북 김천시 대덕면 출신이다.

김복이, 장순덕 부부에게 '집이면서 매장'인 해인특산물(특산물 전시장) 외관. 사진=김성대 기자.

괴질 바이러스에 무너진 토종벌 양봉

김 대표는 귀농 초기 여러가지를 시도했다. 토종벌 200군을 양봉하기도 했고 마와 옥수수, '페루산 땅속 사과'라 불리는 야콘도 그의 손을 거쳤다. 하지만 토종벌은 수 년 전 창궐한 초강력 괴질 바이러스에 무너졌고, 마와 옥수수와 야콘은 육체적으로 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접었다. 사과와 수박, 또는 무와 고구마의 식감을 더한 듯한 김 대표의 야콘은 언젠가 MBC <전국시대>라는 방송을 타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한때 도자기로 유명했던 가야면에서 김 대표는 종종 해당 물품을 거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중국산에 밀려 '1년 수 천만 원 매출'은 이제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수 년 전까지 토종벌 200군 정도를 양봉했는데 낭충봉아부패병(囊蟲蜂兒腐敗病·SBV)이라는 괴질 바이러스가 창궐해 토종벌들을 휩쓸어버렸습니다. 낭충봉아부패병은 1960년대부터 중국과 영국, 일본, 호주, 인도, 태국 등에서 기승을 부려 벌들의 집단폐사를 야기한 바이러스인데요. 꿀벌 유충에 악성 바이러스가 생겨 유충이 번데기가 되지 못한 채 고사하고 마는 병입니다. 정상 벌들도 쭈글쭈글해진 벌집에 머물 수 없어 집을 나가 결국 폐사하게 되죠. 이 바이러스가 국내서 창궐했을 당시 전국 3만여 농가에서 사육한 토종벌 95% 이상이 집단 폐사한 것으로 집계됐다더군요. 막을 수 있는 백신도 없었으니 저를 포함한 업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현재 유통되고 있는 토종벌꿀은 그나마 오지에서 살아남았던 것들이 조금씩 퍼지고 있는 겁니다." - 김복이 대표

김 대표가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나 농장으로 옮겨 심은 귀족호두 나무. 사진=김복이 제공.
길게 늘어진 귀족호두 나무의 꽃모양. 사진=김복이 제공.
해인특산물에서 손 지압용으로 판매 중인 국산 토종 호두 가래(왼쪽)와 그것의 변종인 귀족호두(오른쪽). 사진=김성대 기자

25년 세월 건너온 효자 작물 '귀족호두'

해인특산물의 진정한 특산물은 다름 아닌 귀족호두다. 귀족호두 나무는 흔히 전남 장흥군에만 있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귀족호두 나무는 합천 가야면 치인리에도 있다. 곰취도 있고 음나무도 있는 김 대표 부부의 농장 1,700평 중 기껏해야 1평 남짓을 차지하고 있는 귀족호두. 귀족호두는 국산 토종 호두인 '가래'와 식용 호두가 교배된 변이종으로, 장흥의 귀족호도박물관(장흥에선 한자 발음을 써 호두를 '호도(胡桃)'로 읽는다)에 있는 좀처럼 보기 힘든 6각 귀족호두는 무려 1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인특산물의 효자상품이 된 귀족호두 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복이 대표. 사진=김성대 기자.
해인특산물의 효자상품이 된 귀족호두 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복이 대표. 사진=김성대 기자.

"집 앞에서 우연히 본 나무 한 그루를 농장으로 옮겨 심었어요. 25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맺히지 않던 나무에서 어느날 열매 두 개가 열렸는데 그게 바로 귀족호두였죠. 옮겨 심은 것이 귀족호두 나무였던 겁니다. 보통 한 쌍을 손 지압용으로 쓰는 귀족호두는 문질면 문질 수록 수지(손기름)와 만나 진한 갈색으로 변하는데 그게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 김복이 대표

귀족호두의 메카로 유명한 전남 장흥에도 귀족호두 나무는 300년생을 비롯해 단 서른 그루 안팎에 불과하다고 한다. 희귀한 것이다. 그 희귀한 나무가 김복이 대표에게 왔고 옮겨 심은 지 25년 만에 열매까지 맺었다. 귀족호두와 해인특산물의 앞으로 시너지가 기대된다.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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