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파머스 조합원 인터뷰 9] “보리수가 합천을 대표할 그 날까지!” 가야산 토종보리수 마을 이성영 대표
[합천파머스 조합원 인터뷰 9] “보리수가 합천을 대표할 그 날까지!” 가야산 토종보리수 마을 이성영 대표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11.0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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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출신, 대구서 생활... 부모님 간병 위해 귀농
‘해인사와 보리수’로 합천 대표하는 브랜드 고민
보리수로 ‘농촌체험마을’ 농림부·산림청 지원비 따내
2000년대 초부터 블로그, 카페 등 온라인 마케팅

‘가야산 토종 보리수 마을’ 이성영 대표는 합천 출신이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대구에서 자랐고 결혼도 대구에서 했다. 장남에 장손인 그는 대구에서 회사를 다니다 2000년도에 합천군 가야면 야천리로 귀농했다.

그가 고향으로 온 이유는 모친의 건강 때문이었다. 암과 투병 중이었던 모친을 곁에서 돌보기 위해 그는 아내인 정동선 씨와 함께 고향으로 왔다. 처음엔 합천에서 대구까지 출퇴근을 했는데 3년 뒤 모친이 별세했다. 이어 부친도 암을 앓았고 모친과 똑같이 3년을 투병하다 별세했다. 아픈 부모를 돌보며 6년을 합천에서 보낸 이 대표는 그렇게 합천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2005년, 그는 마을 이장을 맡게 된다.

가야산 토종보리수 마을 이성영, 정동선 대표 부부. 사진=김시원 기자.

이성영 대표는 2000년대 초부터 블로그를 시작했을 만큼 앞서나간 농부였다. 밤낮 없이 열심히 보리수 관련 포스팅을 했고 결국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에 ‘보리수’를 치면 합천 가야산 토종 보리수가 뜨게까지 만들었다. 그는 다음(Daum) 카페에서도 방문자 수가 많고 농산물 판매가 이뤄지는 카페들을 찾아 회원으로 가입해 꾸준히 활동했다. 노력엔 거짓이 없는 법. 이 대표의 정성은 결국 카페 준회원→정회원→특별회원까지 이어진 뒤 급기야 농산물 판매 자격까지 얻게 해줬다. 날개를 단 이 대표는 그때부터 농산물을 키우는 과정과 판매 모습 등을 카페에 올렸다. 카페지기에겐 따로 보리수도 선물했다. 그렇게 카페 메인화면에 이 대표의 보리수가 떴고, 이 대표는 기회를 놓칠세라 7만 원짜리 보리수 1박스를 반값에 주는 이벤트까지 열었다. 그렇게 팔아낸 보리수만 무려 10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낮에 농사짓고 밤에 인터넷 하는 생활은 이 대표를 지치게 했다.

그랬다. 이 대표에겐 열정이 있었다. 대구, 마산 등 대도시 아파트 단지들을 찾아가 부녀회장에게 보리수를 설명하고 부녀회원들에게 보리수를 판매했던 그 열정은 야천리 이장을 맡은 그가 해인사와 보리수를 엮게 하는데 큰 동력이 됐다.

이성영, 정동선 부부는 5천평 땅 중 2천5백평에 보리수 묘목을 심어 가꾸고 있다. 사진=김성대 기자. 
부부가 수확한 보리수 열매. 천식에 좋은 보리수의 영양 성분은 열매보다 잎에 더 많다고 부부는 강조했다. 사진=김성대 기자. 

합천엔 해인사라는 유명 브랜드가 있다. 야천리는 바로 그 해인사 인근 마을이고 그렇다면 이곳에 농촌체험마을을 조성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이곳엔 전국 유일의, 석가모니가 득도하는데 그늘이 돼준 보리수가 자라는 마을이 아닌가. 그는 밤을 새워가며 경남도와 농림부, 산림청에 보낼 기획서를 작성했다. 결과는 대성공. 그의 제안은 농림부로부터 농촌체험마을 지원금 2억원, 산림청으로부턴 산촌종합개발사업 명목으로 12억 6천만원이라는 지원금을 끌어냈다.

보리수를 야천리, 나아가 합천군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자. 부처(해인사)와 보리수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마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자. 이 대표는 확신을 갖고 당시 해인사 주지스님을 찾아가 내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비교적 개혁 성향이었던 주지스님은 “좋은 아이디어다”며 이 대표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문제는 마을사람들이었다. 벼농사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그들의 고정관념은 이 대표의 계획을 바닥부터 가로막았다. 국·도비로 체험마을 조성을 다 해놓고 정작 실행, 운영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전국을 다니다 보면 그 지역만의 특색을 볼 수 있습니다. 합천도 합천만의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걸 고민하다 토종 보리수에 이른 겁니다. 왜, 절에 가면 ‘탑돌이’라는 게 있잖아요. 불탑 둘레를 돌며 남몰래 염원하면 부처님의 공덕으로 그 소원이 이뤄진다는. 보리수로 그런 탑돌이를 해보려고 했어요. 미로 같은 터널을 만들어 사람들이 보리수 아래를 돌아 나오도록 하는 거죠. 보리수 아래서 득도한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는 해인사. 그 해인사를 끼고 있는 마을. 이것만큼 좋은 조건이 어디 있을까요. 사실 이 마을 주변 70%는 다 해인사 땅이에요. 그 땅을 이용해 제가 생각한 걸 실현해보려는 뜻을 해인사 주지스님께서 승낙해주신 거죠. 그런데 주민들은 아무도 동의를 안 하더군요. 군에서 사업비가 마을로 오기 전까지는요.” - 이성영 대표

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던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바뀐 건 이 대표가 경남도, 농림부 등으로 직접 브리핑을 다녀서 가져온 사업비가 눈에 보일 때부터였다. 말로만 끝날 줄 알았던 체험마을 사업이 가시화되자 야천리의 ‘유지’ 중 한 명이 위원장을 자처했고, 정작 사업 실현의 일등공신인 이 대표는 ‘외지인’으로 간주돼 단체에서 배제됐다. 사업을 기획한 이가 사업 실행 단계에서 빠졌으니 당연히 체험마을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체험마을은 외부 업체에 임대를 주게 된다. 한 사람의 치열한 고민 끝에 어렵게 가져온 정부지원사업이 단순 임대사업으로 전락한 것이다. 당시 이 대표의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고 한다.

이 대표 부부가 가공제품으로 판매 중인 보리수 효소. 기존 고객들과 알음으로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사진=김성대 기자.

사람들에 실망한 이성영 대표는 결국 홀로 보리수를 재배하고 판매하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과거 모 합천군수가 보리수 묘목 농가를 지원하려 한 적이 있지만 수확 후 판로가 마땅히 없었던 탓에 보리수를 재배하던 농민들은 하나둘 사업을 접으며 보리수 묘목들을 미련없이 베었다고 한다. 보리수 농사는 농민이 짓지만 보리수 홍보와 판매는 군에서 지원해줘야 하는데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합천군을 대표할 수 있는 보리수의 시장 진출이 지금처럼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이 대표는 안타까워했다.

“저희가 약 2천500평에 보리수를 심는데요, 사실 보리수 농사만큼 재밌는 게 없습니다. 보리수엔 농약, 비료가 전혀 안 들어가거든요. 100% 천연 자연재배인 거죠. 게다가 나무 한 그루당 열매 수확량이 40~50kg에 1kg당 판매가는 8천원. 판매가 제대로만 이뤄지면 수익 면에선 최고인 겁니다. 보리수 가공제품으론 효소가 있는데 앞으론 조청과 케첩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보리수는 전국 1% 사람들만 먹어도 되는 장사예요.(웃음)” - 이성영 대표

이성영, 정동선 부부는 보리수 농사 외 농막가든이라는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 "보리수 아래 방목 사육되는 토종닭"이 이 식당의 주메뉴다. 사진=김성대 기자.

<동의보감>은 보리수에 관해 "시거나 달거나 떫은 보리수는 설사, 목마름, 천식에 탁월하다" 쓰고 있다. 이 대표에 따르면 보리수 속 비타민C는 딸기의 6배, 귤의 12배에 이른다고 한다. 진주 경상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 의뢰한 '보리수 영양분석' 결과도 이와 비슷한 결과를 내놨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그는 보리수 열매보다 보리수 잎 성분이 더 뛰어나다고 했다. 잎은 차로 마시면 된다. 지금, 이 대표의 꿈은 오직 하나다. 바로 보리수의 활성화다.

“가정에 충실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외 다른 목표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보리수를 활성화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살아갈 생각이에요." - 이성영 대표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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