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리뷰] 따뜻하고 담백한 청춘의 자화상, 트레바리 2집
[음반리뷰] 따뜻하고 담백한 청춘의 자화상, 트레바리 2집
  • 김성대
  • 승인 2019.10.3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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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 출신 록밴드 트레바리(Trevery)의 두 번째 앨범 아트웍.

트레바리 음악에서 새로울 건 없다. 언니네이발관과 스미스(The Smiths)라는 긴 그림자에 빚진 시니컬한 자조, 그 자조를 적시는 리버브(reverb) 쟁글팝 사운드는 인디 음악 팬에게라면 이미 익숙한 디자인이다.(데뷔작 수록곡 ‘꽃 피는 열두 달’은 1967년의 비틀즈를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건 트레바리만의 음악이다. 익숙함에서 유일함이 감지될 때 우린 그 음악을 한 번 더 듣게 된다. 평범과 비범의 운명은 바로 그 ‘한 번 더 듣는’ 것에서 갈린다.

트레바리(Trevery)는 영어가 아니다. 트레바리란 ‘이유 없이 남의 말에 반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로 순우리말이다. 이충만이라는 인물이 작곡, 보컬, 기타, 베이스를 전담하고 최지민이라는 드러머가 드럼을 때린다. 베이스를 치던 박성민이 개인 사정으로 팀을 떠나 부득이 2인조가 된 이 창원(진해) 출신 밴드는 2015년부터 준비해 연습실과 녹음실을 갖춘 뒤 활동을 시작, 올해로 음악을 전업으로 삼은 지 4년차에 접어들었다. 이충만과 최지민은 중학교 때 교회에서 만난 12년 지기다.

앨범 [트레바리 2]는 말 그대로 트레바리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정규 1집 [트레바리]는 2년 전인 2017년 7월에 나왔다.

두 번째 트레바리는 따뜻하다. 따뜻하지만 쓸쓸하고, 그러면서도 담백하다. 사실 그들 이름엔 오해의 여지가 있는데, 트레바리는 음악으로 “이유 없이 남의 말에 반대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20대 청년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토해낼 뿐이다. 젊은 혈기로 상대(또는 사회)에게 딴죽을 거는 건 그들 관심사와 거리가 있다. 둘은 차라리 헐거운 온기로 상대를 어루만지는 것에 가까운 음악을 들려준다.

2집은 바로 그런 음반이다. 전멸하지 않기 위해 점멸하는 20대를 노래하며 펑키한 얼트록을 들려준 1집과 달리 트레바리 2집은 따뜻하고 덜 여문 낭만을 뚜렷한 일상에 직접 투여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해체해나간다. 그들이 말하는 일상이란 자신들 노랫말처럼 “어제와 같은, 내일도 같을 박제된” 그것이며, 그것은 결국 “긴 밤과 짧은 낮의 겨울과 같은” 우리네 삶이기도 하다.

정직한 리듬과 리프로 그런 일상을 풀어내는 ‘현관문’은 마치 천용성과 스피츠(Spitz)가 만난 듯 들린다. 이충만의 목소리는 실제 스피츠의 쿠사노 마사무네와 비슷한데, 팔세토를 섞어 비틀거리는 그의 코러스 발성은 초조한 20대 삶을 그대로 닮아 있다.

리버브로 단장한 단정한 공간감(‘D-Day’), ‘나비’에서 들려주는 섬세하고 여린 소리의 미장센. 이처럼 트레바리의 신보는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자맥질하는 상념, 회상의 기운을 머금었다. 거기엔 따뜻한 트래비스(Travis)와 격정의 넬(Nell)이 치고받는 ‘시근 (Want To Be Loved)’의 가사(“마치 다리가 없는 새처럼 내려앉을 수 없는”)가 암시하듯 왕가위의 <아비정전>을 닮은 짙은 우울도 있고, ‘안아주세요’처럼 일상 언어로 단단한 로큰롤 그루브를 뽑아낸 끝에 마주하게 되는 뜻밖의 차분함도 있다. 과거 ‘말(言)’이라는 곡 속 진한 일렉트릭 기타 솔로 대신 그 곡이 가진 넉넉한 사유의 지평을 더 넓힌 느낌이랄까.

트레바리의 두 번째 사연은 가장 거친 소리로 가장 밝은 희망을 노래하는 ‘아침’이 닫는다. 그들 음악세계 3부의 예고인지 자신들 신념의 새삼스런 다잡음인지 모를 그 확고한 에너지는 이 작품이 가진 완성도, 자신감과 정확히 동일선상에 있다.

글/김성대(본지 편집장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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