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파머스 조합원 인터뷰 5] ‘詩로 빚은 꿀’ 합천 카친팜 박경란·송민재 씨
[합천파머스 조합원 인터뷰 5] ‘詩로 빚은 꿀’ 합천 카친팜 박경란·송민재 씨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10.0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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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부산 출신 대표와 농장지기
귀농5년차...유방암 계기로 꿀 알게돼
OEM을 병행하는 양봉 사업 모델
詩를 접목한 천연꿀 마케팅 ‘이색적’
작품전시 시낭송 가능한 문화정원 꿈꿔

“벌은 쏘고 시는 달다”

인문학이 대세인 시대에 벌과 시를 엮어 꿀로 승화시킨 농장이 있다. 바로 합천군의 ‘카친팜’. 카친팜의 ‘카친’은 우리가 짐작하는 ‘카카오톡 친구’의 약자가 맞다. 이 이름을 쓰기까진 우여곡절이 좀 있었는데 카친팜의 송민재 농장지기가 수 년 전 서울시 역삼동에 있는 카카오 사무실을 찾아가 부탁한 끝에 사용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합천군 묘삼면 팔심길에 있는, 청결을 위해 2중 에어샤워 시스템을 갖춘 카친팜 작업장에서 송민재 농장지기와 박경란 대표를 만났다.

합천 카친팜 송민재 농장지기와 박경란 대표. 두 사람은 똑같이 올해로 귀농 5년차를 맞았다. 사진=김성대 기자.
송민재 농장지기는 일기 쓰듯 시 쓰는 일을 부산 운수업자 시절부터 즐겨왔다고 했다. 사진=김성대 기자.

대구와 부산의 만남...귀농 5년차

박경란 대표는 20년간 대구에서 미용학원을 했다. 하던 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온 박 대표는 과감히 귀농을 결심, 올해로 5년째 양봉업에 종사하고 있다. 명함에 직함을 ‘농장지기’로 써둔 송민재 씨는 부산에서 운수업을 했다. 일을 하며 틈틈이 시(본인은 그냥 ‘일기’라고 했다)도 쓴 그는 내 마음 같지 않은 운수업을 접고 귀농해서 글 쓰며 살기 위해 결국 합천 행을 택했다. 박 대표와 송 씨는 올해로 똑같이 귀농 5년차에 접어들었다.

지난해부터 ‘합천북부양봉’이라는 작목반에 함께 몸담고 있던 박 대표와 송민재 씨는 한날 꿀 관련 사업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박 대표가 들어보니 양봉과 OEM을 함께 하는 사업은 한국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듯 보였고, 수월하게 뜻이 맞은 두 사람은 곧바로 꿀시봉과 허니스틱 상품화와 OEM 생산 시스템을 발 빠르게 구축해나갔다. 그렇게 만든 카친팜이 문을 연 지 이 달(2019년 10월)로 두 달 째. 두 사람이 상주하는데 박 대표는 주로 생산 쪽 일을, 송민재 씨는 사업 아이디어와 영업, 판매 쪽 일을 도맡고 있다.

“유방암에 꿀이 좋다는 말 듣고 여기까지...”

지금은 회원 수 5천여 명에 이르는 전국 ‘꿀벌양봉동호회’ 네이버 밴드 총무를 맡고 있지만 사실 박경란 대표에겐 아픈 사연이 있었다. 과거 유방암을 앓은 것이다. 언젠가 병원에서 투병 중이던 그에게 지인이 꿀을 먹어보라 권했는데, 박 대표는 그 길로 병실을 함께 쓰던 환우에게 벌통 한 통을 산다. 그렇게 박 대표는 벌과 함께 합천에 귀농을 해 여왕벌과 일벌을 구별하는 법을 배워 지금에 이르렀다.

“꿀은 많이 먹으면 좋아요. 전국을 다니면서 귀동냥으로 꿀을 배웠죠. 배우면서 알게 됐습니다. 실컷 먹자 꿀은!(웃음) 우연히 산 벌통 하나가 여기까지 저를 이끈 거죠. 암요? 물론 완치 됐죠.” - 박경란 대표

튜브형 꿀시봉과 스틱형 꿀시봉. 사진=김성대 기자.
꿀시봉 4종 세트. 결혼식과 잔치에 많이 나간다는 꿀시봉 포장박스는 서로 호환이 가능해 3종, 4종 구분 없이 다 맞춤으로 들어간다. 이로써 포장재값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제품은 고객이 원하는대로 세팅해주는데, 지난 추석 땐 사진 속 세팅이 가장 많이 판매됐다고 한다. 사진=김성대 기자.   

꿀 생산과 OEM을 동시에!

합천 카친팜에선 자체 브랜드인 꿀시봉과 OEM 브랜드인 허니스틱을 함께 생산해내고 있다. 즉, OEM으로 생산해 각 거래처들에 납품하는 허니스틱과 ‘시를 짓는 마음으로 딴 꿀’이라는 뜻을 가진 꿀시봉은 형제인 셈이다. 이렇게 카친팜과 국산 꿀의 활로를 조금씩 찾아나가고 있는 업체들은 전국에 20곳. 창업 2달이란 걸 감안하면 제법 괜찮은 숫자다. 이처럼 자체 양봉과 타업체 양봉의 '윈윈'을 위해 카친팜이 함께 하려는 곳은 포장재 하나 제작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소규모 양봉 농가들이다.

“외국 꿀에 대비해 소규모 양봉가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최종 제품은 거래처들과 같이 연구하고 함께 디자인해서 나오게 되죠. 며칠 뒤 전국의 소규모 양봉농가들과 만나기로 돼 있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지 않을까 싶은데요. 모두의 상생을 위해 조금씩 힘을 모아나가는 것이죠.” - 송민재 농장지기

詩향을 천연꿀에 버무리다

카친팜의 꿀은 시(詩)와 만나야 비로소 제 향을 낸다. ‘시를 짓는 마음으로 딴 꿀’을 지향하는 곳인만큼, 일기처럼 시를 써온 송민재 씨는 자신이 사랑하는 문학 분야를 끝내 사업의 핵심 정서로 자리매김 시켰다. 카친팜의 고객들 중엔 그래서 시인이 많다. 커피 향에 대한 감성시를 주로 써 ‘커피 시인’으로 알려진 윤보영 시인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른바 ‘꿀시봉 지원단’에 속한 인물로 송 씨와는 카카오스토리 친구(그야말로 ‘카친’)로 안면을 터온 터였다. 2018년 4월 송 씨는 파주에서 열린 시낭송 대회에서 윤 시인을 만났다. 그리고 윤 시인은 송 씨에게 말했다. “자연과 시가 어우러지는 ‘시농장’을 만듭시다.”

“시인 고객 분들이 많아 어린이 시 낭송대회 등 시 관련 행사에 협찬 및 참여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카친팜에선 시인들의 시를 실어 달력도 제작하는데 이는 비교적 덜 알려진 시와 시인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죠. 이런 식으로 향후엔 시와 캘리그래피, 시낭송 대회를 열 수 있는 농장으로 카친팜을 꾸미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근에 연못도 팠었는데, 아무래도 이곳이 절대농지여서인지 장소는 옮기는 게 맞는 듯 해 현재 물색 중입니다.” - 송민재 농장지기

카친팜은 택배 박스부터 시와 캘리그래피 작품들로 꾸민 달력, 양봉가의 정성을 담은 제품까지 온통 詩향을 입혔다. 두 번째 사진 오른쪽 페이지의 시는 송민재 씨가 직접 쓴 것이다. 사진=김성대 기자.

‘꿀 체험’ 가능한 문화정원 만들 것

카친팜은 미세먼지가 있을 땐 아예 작업을 하지 않는다. 매일 따는 벌화분도 이 때 만큼은 쉰다. 병에 담는 2.4kg 분량 밤꿀도 카친팜은 4, 5일 만에 따는 다른 집들과 달리 15일 만에 딴다. 덕분에 카친팜의 밤꿀은 숙성도가 높다. 하지만 이런 카친팜에게도 판로는 만만치 않은 숙제다. 인터넷에선 시장에서 형성된 일정 가격 이상이면 제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팔리질 않기 때문이다.

송 씨는 그래서 내년부턴 꿀을 이원화 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령 1주일~10일 만에 따던 꿀을 내년부턴 3달간 숙성시켜 고객들이 직접 체험하며 봉개꿀 1병(2.4kg)을 따가는 6차산업형 밑그림을 지금 그는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카시아·야생·밤꿀이 끝날 때 한 차례, 그리고 10통 정도는 아카시아에서 밤꿀로 쭉 이어지는 컨셉으로 시도할 예정이다. 가격대는 병당 30만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진짜 좋은 꿀은 ‘프리미엄’으로 분류해 판매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꿀시봉 도깨비 파티’라 이름 지은 지난 번 팜파티 땐 시인 분들을 포함해 도시민만 77명이 오셨는데요, 합천군에서 식대와 차량을 지원해줬죠. 장소가 좁아 당시 인근 커피 농장을 빌려 치렀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저희가 바라는 건 이겁니다.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 문화정원을 만들어 작품 전시도 하고 시 낭송 대회도 하고, 시인들과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선 비교적 오지인 이곳을 벗어나 고속도로 나들목이 가까운 북쪽(야로면)으로 가야하지 않을지, 계속 알아보는 중입니다.” - 박경란 대표

김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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