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먹고 환경을 사 가는 곳" 진주 구천산나물 농장 성창곤·변경순 부부
"자연을 먹고 환경을 사 가는 곳" 진주 구천산나물 농장 성창곤·변경순 부부
  • 김성대 기자
  • 승인 2019.09.04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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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 출신 성 대표, 수산과학원 연구원 지내
36종 나무로 시작...지금은 780종, 수목원 조성 목표
76종 산나물 재배, 음나무 순과 곤드레가 주작물
12년째 전통염색 변경순 씨 "공방체험 해나갈 예정"

“산고개 넘어 학교 가는 길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저수지 굽이굽이 지나는 자연 친화적이고 마르지 않는 샘 참샘이 있는 곳에 농장이 있습니다. 농장 위 너럭바위가 있고 풍혈이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포근하게 연 평균 기온차가 15도씨 이상 납니다. 이곳에서 자라는 산나물은 향이 짙고 과일은 당도가 매우 높습니다. 구천골의 포근함과 깨끗한 공기를 담아가세요.”

진주 구천산나물 농장 변경순 씨는 자신의 명함에 위와 같이 적어 두었다. 같은 명함엔 ‘바람도 놀다 정을 싣고 가는 곳’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고, 변 씨는 스스로를 일컬어 ‘자연지킴이’라고 했다.

구천산나물 농장 '자연지킴이' 성창곤, 변경순 부부. 사진=김성대 기자.

32만평 토지...나무만 780종

진주시 진성면에 있는 농장까진 큰 도로에서 4km를 더 들어가야 했다. 기자는 이런 길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뱀 같은 산길을 돌고 솟은 언덕을 넘어 겨우 이곳에 닿았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있던 소류지를 앞마당처럼 갖춘 성창곤, 변경순 부부의 보금자리. 그 보금자리가 있는 구천골 마을엔 14명 사람들이 저마다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경북 상주 출신인 성창곤 대표는 올해로 귀농 7년차 농부가 됐다. 진주시 귀농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고 토종 종자 부울경이라는 단체 회장도 그의 직함 중 하나다. 과거 그는 국립수산과학원에서 해양생물 갑각류 연구원을 지냈다. 진주엔 15년 전 새우를 채취하러 왔다 눌러 살게 됐다. 성 대표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진주시 한적한 산야에 수목원을 조성하려 32만평 토지를 샀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계획한대로 수목원이 수월하게 조성될 줄 알았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있던 소류지를 마당처럼 끼고 있는 성창곤·변경순 부부의 보금자리. 사람 발길이 뜸할 것 같은 이곳엔 의외로 등산객, 자전거 인구가 많이 오간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개인이든 국가 관리든 수목원을 열려면 나무 종류가 최소 1천종은 있어야 하는데 자신이 구입한 곳엔 초목류, 나무류가 합해 봐야 36종 밖에 없었다. 그는 당초 이곳에 200~300종 나무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인데 오판이었다.

“꾸준히 나무를 심어온 끝에 지금은 780종 정도가 자라고 있습니다. 관의 힘은 현재로선 빌리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가령 수목원이 나라 것이 되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항도 받아들여야 하는 거잖아요. 전 그냥 아무나 와서 거리낌 없이 쉬었다 가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휴양이 되고 힐링이 되는 곳 말이죠. 그런 곳을 꾸미는 저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 되겠습니까.(웃음) 수목원 완성까진 8년 정도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 성창곤

‘나물 중의 나물’ 곰치 비롯해 76종 산나물

성 대표는 진주 날씨가 춘천 날씨 같다고 했다. 진주 날씨는 작물을 재배하기엔 적당치 않은 기후란 얘기다. 이는 진주에서 무화과를 재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지난 30년 동안 5월 1일에서 15일 사이 진주에 서리가 내린 것만 일곱 차례다. 올해도 몇 십 년에 한 번 오는 냉해가 진주를 덮쳤다. 때문에 진주에선 과일류 재배가 쉽지 않다. 그는 대신 산나물과 차를 주로 심는다. 지금껏 그가 심은 산나물만 76종. 강원도에서만 재배할 수 있는 것도 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 전라도와 거제시, 부산 영도 정도에서만 자랄 수 있다는 황칠나무는 물론 단맛이 설탕의 1천배라는 감로차도 그는 키워낸다.

“한약재 일종으로 닭백숙 만들 때 쓰는 음나무 순(나물)을 많이 합니다. 사실 심을 때만 해도 정신 나간 짓이었죠.(웃음) 진주에는 음나무 나물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잘 팔리질 않았거든요. ‘나물 중의 나물’이라는 곰치도 4년 전 장터에서 딱 한 봉지 팔았습니다. 그래서 진주에선 판매를 거의 하지 않았어요. 그나마 곤드레가 경제성 있는 작물 축에 들죠.” - 성창곤

귀농 초기 성 대표는 지게를 지고 너른 농장을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구천산나물 농장 풀은 4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예초기로 베지 않으면 안 된다. 맑은 날엔 아침 저녁으로 매일 베어야 한다.
고추, 들깨, 참깨, 콩 등을 유기 재배 하다 보니 이곳은 그야말로 '풀과의 전쟁'이다. 1,800평 되는 들깨 밭의 경우 부부가 풀을 뽑기 시작하면 일주일이 걸린다.

성 대표는 이르면 새벽 5시나 6시에 일어난다. 물론 무더운 7, 8월엔 10시 이전에 일을 마치고 들어와야 한다. 풀 뽑고 나무와 나물 심어 가꾸는 일을 여기선 성 씨와 변 씨 두 사람이 다 한다. 성 대표 표현대로라면 둘이서 “죽기 살기로” 한다. 

변경순 “전통 염색 작품 활동 위해 귀농”

변경순 씨는 2007년부터 전통 염색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전통 염색이 대중화 된 건 2005년도 무렵부터다. 그는 한약재를 달여 염색한다. 우리네 오랜 방식이다. 변 씨는 과거 동호회 식으로 염색 전시회도 했다. 변 씨는 진주에 온 지 올해로 5년째다.

변 씨가 염색을 시작한 계기는 평범하다. 어느 날 눈에 띈 한복 색이 너무 고와 무엇으로 한 건가 물었더니 천연 염색으로 했다 해서 ‘저렇게 하는 거구나’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왔다. 천연 염색은 식탁보, 가리개 등 일상 용품들에 두루 쓰인다. 천연색은 공장에서 찍은 것과 다르다. 질리지 않는 색이며 어디에 두어도 어울리는 색이다. 바래지면 바래진대로 어울리는 것이 바로 천연 염색이라고 변 씨는 말한다. 그는 염색 제품을 직거래로 판매 한다. 염색 체험도 한 달에 한 두 건 문의가 들어온다. 최근엔 진주혁신도시 정주여건 개선과 지역상생발전을 위해 열린 ‘소문날문화달장’에 가서도 체험 행사를 치렀다.

“제가 시골에 매력을 느낀 건 농사보단 작품 활동에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에요. 옷을 만들고 인테리어 작품도 만드는 공방을 열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온 거죠. 농촌에 가면 아무래도 미용실이나 옷 사러 가기가 도시보단 힘들 테니 먹는 것과 입는 건 스스로 해결하자는 생각을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자연의 모든 것이 염색 재료다, 색이 언제 얼마나 빠지느냐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도 있었구요. 서예와 문인화도 조금 배웠는데 취미 수준이었죠.” - 변경순

변경순 씨는 2007년도 무렵부터 한약재를 달여 쓰는 전통염색을 해왔다. 구천골에 공방을 차리는 것이 그의 작은 꿈이다.

성창곤 대표는 차와 식물에 관해 계속 공부해왔다. 1990년대 초부터 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그는 93, 94년도에 차 공부를 해 관련 자격증을 따고 농촌진흥청,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발급하는 자격증도 잇달아 취득했다. 그나 음나무, 가죽나무 순을 재배하고 있는 이유도 그것들이 ‘약용식물’이었기 때문이다. 성 대표는 꽃차에도 남들보다 일찍 눈 떠 1995~97년도에 이미 차에 꽃향을 응용할 줄 알았다.

성창곤, 변경순 부부는 귀농해 제일 힘든 것이 ‘행정 처리 일들’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비가 내리면 도랑 정리를 해야 하는데 잘 몰라 난감한 식이다. 부부는 그래서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리 해당 지자체에 어떤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받을 수 있는 건 다 받으라고 조언한다. 그래야 잘 정착할 수 있고 오래 머물 수 있다.

“저희가 여기 정착한 궁극적 이유는 수목원 조성입니다. 심고 거두고 직접 해먹는 치유의 숲, 치유 농업을 통해 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곳을 만들고 싶은 거지요. 이곳은 그런 장소를 꾸미기 위한 천혜 조건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소나무 숲, 편백나무 숲, 백합나무, 차나무 등 무엇이든 가능한 것이죠.” - 성창곤

“도시민들이 와 텐트 치고 쉬면서 자두, 매실, 포도 등 알아서 과일을 따먹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어요. 전통염색 관련 공방 체험도 물론 생각하고 있구요. 그저 이 농장이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휴식할 수 있는 쉼터가 될 수 있다면 저희는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 변경순

김성대 기자 사진제공 성창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