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의 커피인문학] 마호메트를 살린 성스런 커피
[박영순의 커피인문학] 마호메트를 살린 성스런 커피
  • 박영순
  • 승인 2019.08.1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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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히라(Hira) 산에 있는 작은 동굴. 마호메트가 명상을 하던 곳으로, 무슬림들은 마호메트가 이 곳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는다. 사진=위키피디아.
사우디아라비아 히라(Hira) 산에 있는 작은 동굴. 마호메트가 명상을 하던 곳으로, 무슬림들은 마호메트가 이 곳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는다. 사진=위키피디아.

“커피는 이슬람의 음료이다”는 말이 적잖게 나돈다.

DNA 추적 결과 커피나무는 아프리카 카메룬의 치자나무에서 시작돼 에티오피아에 도착했을 즈음 아라비카 종으로 모습을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홍해 건너 아라비아 반도에서 살아온 이슬람교도들의 음료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커피가 세계로 퍼지는데 이슬람교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커피와 이슬람교의 인연은 마호메트에서 시작된다. 마호메트는 서기 57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태어났다. 메카는 홍해 연안 항구 도시 ‘지다’에서 70킬로미터 정도 내륙에 위치해 홍해에 접근하기 좋았고, 따라서 홍해를 통해 인도양·지중해와 연결하기 쉬운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더욱이 물이 풍성하게 솟아나는 잠잠우물 덕에 대상들이 사막을 건너며 쉬어가기 좋은 곳이었을뿐더러 교역이 잦아 상업도시의 면모도 갖추게 됐다. 5세기 무렵 메카는 다양한 신을 추종하는 사람들로 붐비면서 다신교의 성지로도 주목을 받았다.

마호메트가 속한 쿠라이시 족은 메카를 움직이는 힘있는 부족이었으며, 특히 장사에 솜씨가 있어 많은 부를 축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마호메트는 이 부족 안에서 소수파로서 살림이 넉넉지 못했던 하심가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땐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 할아버지 손에 자랐다. 할아버지마저 숨지자 마호메트는 삼촌이 키운다. 무역을 하는 삼촌을 따라 12살 마호메트는 시리아에 갔다 기독교를 접하고 큰 세상을 봤다.

마호메트는 스물 다섯 살 때 부유한 상인이었던 마흔 살 미망인 하디자와 결혼 했다. 이후 15년간 자식들을 낳고 매우 풍족한 생활을 하다 마흔 살이 된 610년 삶의 의미를 찾고자 ‘절대 고독의 상태’에 빠졌다. 그는 메카의 카바신전에서 3.2km 정도 떨어진 히라산 정상에 있는 동굴에서 수행 했는데, 꿈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신의 계시를 받았다. 이것이 이슬람교의 시작이다. 이 대목에서 커피가 등장한다.

마호메트를 상상해 그린 커피그림. 그림=유사랑 화백.
마호메트를 상상해 그린 커피그림. 그림=유사랑 화백.

마호메트는 금식수행을 하면서 몸이 허약해져 죽음의 위기를 맞는다. 이 때 그를 살린 게 커피열매였다. 가브리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동굴 밖으로 나가 커피 열매를 따 먹어라”고 했다거나 “커피 열매를 달여 마시게 했다”는 등 내용이 조금 다르지만, 커피가 목숨을 구해줬다는 점에선 같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마호메트가 병들어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검은색 음료를 선물로 주고 갔는데, 그 음료를 마신 마호메트는 남자 40명을 말 안장에서 떨어뜨리고 40명 여인과 동침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내용이다.

기원설은 무슬림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질 뿐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인 출신으로 커피역사를 기록한 윌리엄 우커스는 “사후 200년 경(832년 경) 이전 커피에 관한 사료는 찾아 볼 수 없다”면서 마호메트와 커피의 인연은 추측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커피가 마호메트를 살렸다고 믿는 무슬림들은 카바 신전에 순례를 갔다 잠잠우물을 떠가면서 커피도 고향 땅으로 가져갔다. 카바신전에서 동남쪽으로 20m 거리에 있는 잠잠우물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살린 것으로 전해져 무슬림들은 이를 성수로 여긴다. 순례객들은 이 물을 가져가 치료를 위해 쓰기도 했는데, 순례객들이 붐벼 잠잠우물에 접근하지 못할 상황이 빈번해지자 “잠잠성수 대신 마호메트를 살린 커피를 몸에 담은 자는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커피는 빠르게 무슬림 사회를 파고 들어갔다.

글/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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